생활문화

우남 이승만 대통령님의 주요 활동 기록

민세 만세 2017. 10. 19. 23:44


아직 전쟁 중인데도 '북진통일' 하자는 이승만 대통령의 모습이 당당합니다.
늦었지만 북진통일이 답이었는데 결국은 이 모양이 되었습니다.



1950년 12월 자유통일을 눈앞에 두고 중공군에 쫓겨 철수하는 미군과 북한 피난민들 '흥남철수' 현장



김일성의 6.25남침중인 1950년 7월21일 부산 피난지에서 미군이 찍은 독립운동 당시 간직하고 다녔던 태극기와 이승만 대통령 경무대에서 야밤중에 갑작스러운 탈출에도 불구하고 태극기를 챙겨서 내려오셨다는 설명이다.






전쟁 중인 1952년 12월 미국 대통령 당선자 신분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중동부전선을 시찰 중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태극기를 선물로 받고 있는 모습
이 태극기는 켄사스주 아빌린에 있는 아이젠하워 대통령 기념관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다.



이승만 대통령의 아이젠하워 대통령 앞 서한

지금부터 64년 전 이승만(李承晩)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이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제34대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1953년6월13일자 서한이다. 이때 대통령 취임 1년차의 아이젠하워가 이끄는 미국 정부는 6.25 전쟁의 휴전을 서두르고 있었고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의 이 같은 휴전 추진에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에게 이 서한을 보낸 뒤 5일 후인 6월18일 3만5천여 명의 반공포로들을 일방적으로 석방하는 폭탄적 조치로 막바지에 와 있던 판문점 휴전협상에 충격을 주었다. 판문점 휴전협정은 그로부터 한 달 뒤인 7월27일 끝내 체결되었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저항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이라는 국가안보의 안전판(安全瓣)을 이끌어냈다. 이 서한은 이헌표 전 주미대사관 홍보문화원장이 발굴하여 2010년6월17일자 <국방일보>에 게재했던 것이다. 李東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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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우선 1953년6월6일자 귀하의 친절한 서한에 대한 회답이 늦어져서 미안합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린다면, 사실은 편지 초안을 잡은 것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을 회피하고 싶었지만, 논쟁을 하지 않고는 나의 생각을 명백하게 표현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늦어지고 말았습니다. 부디 귀하께서 나의 우정이 담긴 이 서한을 나와 동일한 우정을 가지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처음부터 우리는 중공 침략자들의 한반도 잔류를 허용하는 휴전이 이뤄진다면 우리가 생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방 국가들에게 누차 명백히 밝혀 왔습니다. 이 같은 우리의 불안감은 조금도 완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우방들은 휴전 후로 예정된 정치회담에서 중국 공산주의자들의 한반도 철수와 뒤이은 한반도 통일이 당연히 성취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믿는 것처럼 보입니다. 나는 이런 점에 대해서 구체적인 논쟁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적어도 우리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 두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이는 확실히 의견이 다를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의견은 결코 묵살할 수도 없고 잊을 수도 없는 사실들에 의하여 뒷받침되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겪은 이 경험들은 그에 상반되는 납득할 만한 다른 사실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의 판단 형성의 지표가 되는 요인들로 계속 남을 것입니다.

 지금 국제연합(이후 유엔으로 표기)은 한반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염두에 두지 않고, 공산침략자들과 휴전협정을 체결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는 실제로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국가로서 생존할 수 있느냐 하는 의문에 끊임없이 사로잡히게 만듭니다. 나는 내가 적는 다음 구절들이 귀하로 하여금 지금의 상황에 대한 우리의 우려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는 세계적 차원의 공산침략에 대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군사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우리를 위해 행한 일들을 회상하면서 최후까지 미국의 우방으로 남기를 갈망합니다.

만약 미국이 어떤 이유 때문에 임박하고 있는 휴전의 결과로 더 이상의 투쟁에 참여하는 것을 중단하거나 한반도에서 모두 철수함으로써 방관자의 입장을 취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에 반대할 하등의 의사가 없습니다.

미국이 한반도를 떠나는 것이 필요하거나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면, 미국은 우리가 미국의 친구로 남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미국도 우리에게 우호적 감정을 가지고 이 땅을 떠날 수 있습니다. 피차 상대방의 계획을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양국은 상호 친선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3년간 지속된 이 전쟁의 첫해에 미국과 유엔은 상호 번갈아가며 반복적으로 그들의 전쟁목표가 통일ㆍ독립ㆍ민주 한국의 건설과 침략자들에 대한 응징이라는 점을 공언했습니다. 미국과 유엔은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을 때 이러한 공언들을 했기 때문에 우리는 당연히 그들의 공언들이 바로 그들의 전쟁의 목표인 것으로 인식했습니다.

그러나 후에 공산군이 예상보다 강하다는 사실이 입증되자, 유엔의 정치가들은 전쟁에 의한 한반도 통일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말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약하다는 점을 공공연히 고백한 것이었으므로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 사람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는, 마치 우리가 그 같은 목표들을 이미 달성했거나 아니면 그 같은 목표를 이제는 포기하기라도 한 것처럼, 한반도 통일이나 침략자에 대한 처벌에 관한 얘기는 더 이상 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들리는 말들은 모두 휴전에 관한 얘기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유화의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지는 휴전이 우리에게 명예롭고, 바람직하며, 항구적인 평화를 가져다줄지 우리는 심각한 의문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공산주의자들이 싸움터에서 동의하지 않은 일을 협상의 테이블에서 동의할 것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경제원조와 한국군 증강에 관한 귀하의 관대한 제안들은 우리에게 긴급히 필요한 것이므로 한민족 전체가 감사해 마지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우리가 이해하는 휴전을 수락하는 대가로서 오는 것이라면, 우리는 이 제안들에 대해 그다지 마음이 끌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앞에도 말한 바와 같이 이러한 휴전의 수락은 사형선고의 수락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그 같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후에는 그 어느 것도 한국에게는 소용이 없다는 우리의 말은 그냥 하는 헛소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휴전회담 체결 후 양국 간에 상호방위조약을 이끌어 내도록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귀하의 친절한 약속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사실 상호방위조약이야말로 우리가 항상 추구해 오던 것으로 우리는 이를 마음속으로부터 지지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휴전과 연계돼 있다면, 그 효력은 거의 전무할 정도로 떨어질 것입니다.

 대통령님, 귀하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어려운 상황을 용이하게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국군장병을 포함해 한반도에서의 모든 일을 유엔의 처분에 맡긴 결과로 끔찍한 인적 손실과 물질적 파괴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한 이유는 우리와 우리 우방들이 분단된 한반도를 통일하고 공산 침략자들을 응징한다는 공통의 목표를 가졌다는 단 하나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유엔은 이 본래의 목적을 갑자기 버리고, 침략자들과 우리로서는 수용할 수 없는 타협을 하려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이 협상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협상에 관한 협의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타협의 조건들이 한민족의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유엔은 지금 우리더러 그 같은 유엔의 노력에 협력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으며, 휴전조건에 관해서는 적과 손을 잡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유화주의자들의 주장이 미국의 휴전에 대한 태도를 변경시키는 데 주효했다는 냉혹한 현실을 외면하려고 해도 결코 그럴 수가 없습니다. 한반도에서의 치명적인 휴전으로 이러한 위험한 경향이 항구화된다면, 결국 미국을 포함한 나머지 자유세계가 궁극적으로 위태롭게 될 것이라는 것이 우리의 견해입니다. 수천만의 자유인들이나 자유를 잃은 사람들이 모두 뼈에 사무치게 기도하고 희망하는 것은 바로 미국이 철의 장막 뒤에서 사슬에 묶여 있는 이들을 자유롭게 해방시키는 데 앞장서 달라는 것입니다.

 휴전협상이 양측 간에 서명만을 남겨 놓고 있는 것과 다름없는 바로 이 순간, 공산주의자들은 대규모 공세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가까운 장래에 대한 경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현재의 휴전조건대로라면 공산주의자들은 아무런 장애도 받지 않고 병력을 증강시켜서 필경에는 저들이 선택한 시간에 대한민국을 일거에 삼켜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후에 극동의 나머지 지역은 어떻게 될 것입니까? 아시아의 나머지 지역은 어떻게 될 것입니까? 그리고 자유세계의 나머지 지역은 어찌될 것입니까?

이 위기의 시간을 맞아 귀하가 현명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필요한 대책을 강구하기를 여전히 기대하면서, 이만 줄입니다.

경구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



1954년 8월 미국을 국빈방문 중인 이승만 대통령 내외가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베푼 만찬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한미동맹을 비롯한

군사원조 등 자신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해준데 대해 흡족한 표정으로 담소를 하고 있는 모습



1951년 1.4후퇴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백선엽 장군의 안내를 받아

나폴레옹의 후예들인 프랑스군 지휘관 몽크레어 장군에게 무공훈장을 달아주고 있는 모습.
프랑스정부는 최근 정통성이 없는 친북좌파정권하에서 개최될

2018 평창동계올림픽 불참을 고려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6.25 남침 4개월만에 수복한 평양을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이 평양시청에서 연설하는 모습.

평양시민들이 '우리의 영도자 이승만'이란 현수막을 걸고 평양입성 환영대회를 열었다.

그러나 중공군의 대거침략으로 남북통일은 물거품이 되었다.






1919년 3.1만세운동후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위해 준비 중 호놀루루에서 거행된

리셥션에 최초로 사용되었던 Republic of Korea 비표입니다.

이 비표도 이승만 자신이 도안한 듯 당시는 일제에 의하여 이승만에게 30만 달러 현상금이 걸려 있었습니다.



1921년 1월1일 신년기념사진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 3년 초대대통령 이승만박사(둘째줄 가운데)

이동휘 이시영 손정도 안창호 이동녕 김구(밑에줄 왼쪽 세번째)등 각부처 각료들



1948년 7월17일 세계적인 명품헌법
대한민국 헌법에 서명한후 공포 기념방송을 하고있는 이승만 초대대통령




이것은 1948년 10월 20일,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 장군의 초청으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

환영행사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1948년 8월 15일 건국 이후였으므로 당연히 이승만 박사는 대한민국 대통령 자격이었다.

그러나 이날 환영식장에서 태극기는 볼 수 없었다. 아니 게양되지 않았다.

그것은 국제연합의 국가 승인이 없었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따라서 대한민국 국기인 태극기도 공식행사에서 게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은 수기를 만들어 가지고 간 것이다.

유엔의 감시 하에 자유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그 의원들이 헌법을 제정하고

그 헌법에 의해 정부가 조직된 대한민국이지만, 유엔의 승인을 득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공식행사에서 태극기도 게양할 수 없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어느 한 집단 혹은 민족, 또는 종족들이 자기들끼리

마음이 맞아 국가같은 조직을 만들어 스스로 국가로 칭하더라도

국제사회의 승인이 없다면, 내부적으로 나라로서의 기능은 할 지 몰라도

국제사회의 일원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1919년 상해 한 구석에서, 불과 수십 명이, 본국 주민의 대표성을 득하지 못한

사람들이 단체를 일컬어 임시정부로 칭했다 해서 1919년은 대한민국 건국원년이고

상해임정 수립이 대한민국 건국이라고 우기는 사람들도 있음이 이해되지 않는다.



1948년 12월31일 이승만대통령과 초대 국무위원들





https://youtu.be/BKdayCLSAS0